처음 이 골목에 간 날은 흐렸다. 벽은 그냥 회색이었고, 사진가는 삼십 분쯤 서 있다가 장비를 그대로 챙겨 돌아왔다. 다음 날도 흐렸다. 그다음 날은 비가 왔다.
스무 날 중에 빛이 제대로 든 날은 아홉 날이었다. 그중에서도 벽 전체가 물드는 날은 네 번뿐이었다. 나머지는 구름이 지나가거나, 맞은편 건물의 그림자가 먼저 도착하거나, 이십 분을 다 채우지 못하고 해가 넘어갔다.
기다린다는 일
사진가 김도현은 이 작업을 “기다림에 관한 기록”이라고 불렀다. 정확히는 기다리는 동안 보이기 시작하는 것들에 관한 기록이라고 했다.
사흘째부터 골목을 지나는 사람들의 시간표가 보였다. 다섯 시 십 분에 나오는 고양이, 다섯 시 반에 셔터를 반쯤 내리는 세탁소, 여섯 시가 되어야 불이 켜지는 이층 창문. 빛을 기다리는 동안 골목의 하루가 통째로 눈에 들어왔다.
“찍고 싶은 것을 기다리다 보면, 찍을 생각이 없던 것들이 먼저 보이기 시작한다.”
Kim Do-hyun, photographer
같은 자리, 다른 날
스무 날 동안 같은 삼각대 자리에서 찍은 사진을 나란히 놓으면 벽 색이 조금씩 다르다. 계절이 바뀌면서 해가 지는 각도가 매일 조금씩 움직였기 때문이다. 첫날의 빛은 벽 아래쪽에 걸렸고, 마지막 날의 빛은 창틀 위까지 올라갔다.
남는 것
작업이 끝나고 남은 사진은 예순두 장이었다. 그중 이 이야기에 실린 것은 여섯 장이다. 나머지 쉰여섯 장은 대부분 빛이 오지 않은 날의 기록이고, 사진가는 그것들을 지우지 않았다고 했다. 기다린 시간도 작업의 일부라는 이유였다.



